쥬크 박스

서태지와 윤하의 Take Five. 그리고 나의 추억들

미계 2020. 4. 1. 06:57

2017년 9월 2일.

서태지의 25주년 콘서트를 기반으로, 현재 여러 후배 가수들이 서태지의 음악을 리메이크하는 '타임 트래블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이다.

방탄소년단의 comeback home을 첫 타자로 어반자카파의 moai.

그리고 이번 세 번째 타자 윤하의 take five

혜성, 오디션, 텔레파시, 우산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윤하의 음악이다. 아무래도 나는 오타쿠라 윤하의 초기 음악을 좋아하는 편이다. 특히 혜성은 들을 때마다 블리치가 생각나서 더 벅차 오름ㅠㅁㅠ

 

내가 좋아하는 두 가수가 이루는 콜라보.

그것도 take five

서태지의 오랜 팬으로서 이번 프로젝트의 진행 자체가 너무 즐겁지만 특히 take five는 내 인생에서 정말 빼놓을 수 없는 곡이랄까.

 

그래서 포스팅으로 한번 넋두리를 풀어보고자 한다.


take five가 수록된 서태지 5집

 내가 서태지를 처음 알았던 시기는 2004년 초등학생 때였다. 당시 나는 10시간 가량 컴퓨터 게임만 했던 말썽꾸러기였다. 지금은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까봐 게임을 끊었는데, 그때의 나는 이상한 구석이 있어서 만렙이나 목표하는 랭킹 안에 들 때까지 계속했었다. 그래도 내 할 일을 어느 정도 하고 했었기 때문에 부모님께서 크게 제재를 가하시진 않으셨다. 그러던 어느날, 학생주제에 새벽에 몰컴을 하고 있는 내 모습 + 부모님 몰래 휴대전화로 캐시충전을 하는 기행을 보고... 충격을 먹으셨는지 한동안 컴퓨터를 금지시키셨고 나는 강제적으로 '학교-학원-집'의 루트만을 반복하며 무료하고 한정된 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여가시간에 유일하게 허가받은 미디어 매체가 티비였다. 맞아 아직도 기억난다. 그 시기에 내가 풀하우스를 즐겨봤었다. 아마 수목드라마였다. 그렇게 풀하우스를 비롯한 요일별 미니시리즈 드라마로 심심한 생활을 달래던 나는 문득 엠티비 채널을 틀었다. 그때는 엠티비와 엠넷이 함께 있었는데 엠넷은 음악 관련 예능 프로그램을 보여준다면 엠티비는 뮤직비디오를 많이 방영해주었다.

 그 시절 내 또래 친구들은 동방신기와 같은 아이돌 가수들을 열정적으로 좋아했던 반면에 초딩의 나는 신기하게도 그쪽에는 아예 무관심이었다. 오히려 에이브릴 라빈이나 그린데이, 심플플랜, 오아시스 이런 얼터너티브 락, 브릿팝 계열의 가수들을 좋아했다. 엠티비는 상대적으로 외국 음악을 많이 틀어주었기 때문에 마이너한 아티스트들은 알 수 없었지만 유명한 외국 음악은 접할 수 있었다.

아직도 생생하다. 그 더운 여름날에 처음으로 보았던 서태지의 live wire 뮤직비디오를. 발라드 가수들의 절절한 드라마식 뮤비와 음악들이 판을 치던 카오스 안에서 지루함에 절규하던 나의 락 에너지를 일깨워 주었던 그 음악. 정말 더웠던 그 여름에 샤워 같은 목소리를 내려주었던.. 그 이후에 발매됐던 (아마 일 년 후..?) 서태지컴퍼니 소속 밴드 피아의 my bed가 더블 콤보를 주었고 나는 급속도로 서태지와 서태지컴퍼니에 빠져들었다.

버디버디, 싸이월드는커녕 컴퓨터론 게임밖에 하지 않았던 내가 인터넷에 서태지를 검색해보고 그의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자주 언급이 되었던 서태지와 아이들 컴백홈, 난 알아요 및 솔로 음악 울트라맨이야 이외엔 처음 접하는 음악들을 속속들이 내 귀에 흡수시키기 시작했다.

 

 나는 live wire의 앨범이 7집이라는 것에 놀랐고, 내가 서태지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한 2004년에 이미 서태지란 존재가 대중에 알려진지 십 년이 넘었다는 것에 놀랐다. 그렇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는 음악을 했었다.

노래를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좋았다. live wire 이외에도 heffy end, 10월 4일 등 멋진 수록 곡들이 있었고, 특히나 오렌지와 ㄱ나니 등이 수록된 울트라맨이야 앨범은 시대적인 트렌드를 반영하여 나를 더욱 놀라게 했다. 그가 작사 작곡한 모든 앨범들과 노래에 컨셉과 서사가 있었고 당시의 시대적 사건이나 이슈들을 담아내는 그 모습들이 정말 멋졌다. 나는 정신없이 서태지의 음악에 매료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어느새 그의 팬이 되었고 그 이후에 발매된 8,9집 앨범을 꼬박꼬박 구매하고 스트리밍 하였다. 특히 2014년엔 내가 수험생활을 했었는데 수능 직전에 소격동을 선두로 크리스말로윈 앨범이 나와서 더욱 기억에 남는다.. 미친 듯이 공부하면서 신곡들을 들어댔던 나.. ㅋㅋㅋ

 ​각설하고 다시 take five로 돌아가자면, 사실 그때의 나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하고 솔로로 나온 첫 앨범이 울트라맨이야인 줄 알았다. 그러나 서태지에 대해 정보를 찾아보니 첫 솔로 앨범이 이미 1998년에 발매되었던 것이다!! 그도 그런 게 이 5집(솔로 1집)은 서태지가 활동을 안 했기 때문에 몰랐었다.. 6집 울트라맨이야 발매 당시 빨간 머리의 서태지를 유딩시절의 나는 어렴풋이 기억을 하는데 5집은 정말 '무'였기 때문에 머릿속에 아무것도 없었다. 충격에 빠진 나는 당장 음악사이트에 들어가서 1998년 앨범을 서치했다. (그때 기억으로 벅스 사용했다.)

앨범 커버가 되게 묘했다. 탈의를 한 토르소가 머리 부근은 천으로 감싸 표정이나 얼굴을 볼수 없고 잘린 팔 부근에는 날개가 나와있으며, 뭉크의 절규가 연상되는 어떤 이의 괴로워하는 실루엣과 새하얀 새.. 성스러운 느낌이 들면서 한편으론 공포감을 불러 일으켰다. 간략히 비유해 보자면 아마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봤을 때의 딱딱하면서 무서운 느낌으로 대입해보고 싶다.

 더불어 곡명들도 대부분이 take one, take two 등의 동일한 형식으로 제목을 주지 않고 순서만 나열해있었다. 후에 서태지는 제목으로 인해 곡에 선입견을 가질까 봐 제목을 통일 시켰다고 했다. 그 소식을 접한 나는 또 한 번의 센세이션을 겪었었다.

서태지의 5집 앨범을 들었을 때 처음 내 감상은 독특한 앨범 커버의 영향과 기이한 수록 곡 제목들에 영향을 받았는지 '찝찝하고도 이상하다' 였다. 테이크포의 가사는 무서웠고 특히 티비..티비.. 못 찾겠어.. 거리는 테이크투... 그리고 오래된 노래가 함께 가져다주는 미스테리한 감정..

그렇게 나는 5집 앨범의 감상을 끝내고, 마지막으로 take five의 뮤직비디오를 보았다. 앞의 곡들의 임팩트가 커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take five를 들었을 때는 잘 몰랐었는데 이 뮤직비디오를 보니 갑자기 take five란 곡이 나에게 확 꽂혔다. 신나고 희망적이고 밝았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락 사운드가 왕창 들었던 그 노래. 뮤직비디오는 종이비행기의 시점으로 씬들이 진행된다. 뮤직비디오와 음악이 잘 어울려 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억압된 루트만을 반복하던 나에게 자유라는 단어를 간접 체험하게 해주었기 때문에 아마 더 인상깊었지 않나 싶다.

 그 이후로 나는 용량이 작아 몇 곡 들어가지 못했던 그리운 이름인 yepp 엠피스리에 테이크 파이브를 넣어서 매일 아침 등굣길마다 듣고 다녔었다.

 ​한창 유행하던 대중가요들을 즐겨듣던 친구들과는 절대 공감하지 못하는, 그런 감동적인 음악을 나만 알고 즐기는 행위에 대한 만족이었을까? 아니면 보석을 일찍 알아본 내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었을까?

정의할 수 없는 긍정적인 감정들로 부풀어 올라 서태지의 음악에 박자를 맞췄던 그 시절의 내가 아른 거린다. 그만큼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준, 그런 곡이었다.

그랬던 20세기의 음악이 21세기의 음악으로,
똑같은 감정을 안고 이렇게 21세기의 현재의 나에게 다시 찾아왔다.

 


 

1998년 take five 뮤직비디오. 노래 자체가 희망적이고 뮤비 내용도 희망적이다.

종이비행기란 매개체가 참.. 그 시절에 순수하게 느껴질 수 있는 매개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마지막의 여자아이는...

 

 

윤하가 이번에 리메이크한 take five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주인공 신세경.

20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동일 인물이 세월을 먹고 자란 모습을 하고 동일한 노래의 영상에 출연한다는 것만으로도 뭔가 뭉클해진다.

 

윤하의 발라드적 감성이 take five의 멜로디에 잘 녹아들어서 그런지 당시 곡을 열정적으로 듣던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오르게 만든다..원곡과는 비교적 서정적인 톤이 더욱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돌아가고 싶다 ㅠㅠ.... 흑..

지금도 나는 열심히 윤하의 take five와 서태지의 take five를 반복해서 들으며 여운에 빠져있다.

 

서태지 25주년 Time : Traveler